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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동부보훈지청 러시아 탐방 2

경기동부보훈지청 러시아독립사적지 탐방 2


2019.07.16

7월 16일 둘째날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후
우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수리스크로 넘어갔다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톡 북쪽으로 약 112km 지점으로 극동지역의 경제적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제당, 식품가공, 선박, 자동차 부품 등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제 1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경제개발을 위한 5개년 계획하에 발전하였다
니콜리스크우수리스키, 보로실로프라는 이름을 거쳐 1957년 우수리스크로 개명되었다
우수리스크는 연해주를 중심으로 펼쳤던 독립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곳이며
이상설 선생 등이 머물렀던 유적지가 남아있는 곳이다




2시간 정도를 달려 라즈돌리예 역에 도착을 하였다
라즈돌리예 역에서 스탈린은 블라디보스톡과 그 부근에 있는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다
추위와 배고픔에 못이겨 많은 분들이 가는 도중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고 한다
약 17만명의 고려인들이 124대의 화물차에 실려 40여일 정도 중앙아시아로 달려 3분의 1정도가 추위와 풍토병으로 돌아가신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1937년 소련 정부는 '일제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연해주 일대에 흩어져 살던 우리 민족을 모두 이 라즈돌리예 역으로 집결시켰고,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이들을 지붕도 없는 가축용 화물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어른들도 견디지 못할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갓난아이들은 모두 굶거나 얼어죽었고, 간이역에서 먹을거리를 구하러 잠시 열차에서 내렸던 어른들도 예고없이 떠나간 기차를 쫓아가다 시베리아 벌판의 원혼이 됐다"

현재 라즈돌리예역은 조국없는 민족의 설움과 눈물을 간직한 채 지금은 쓸쓸하게 낡은 건물만 황량하게 남아있다
중앙 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들꽃과 같은 생명력으로 그 곳에서 고려인의 문화를 꽃피웠다






아쉬운 마음과 함께 버스에 탄 우리들은 한참을 달려 고려인들이 살고있는 '고향 마을'과 '우정마을'에 도착하였다






도착하니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의 영남대학교 학생들이 '고향 마을'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다





집들도 몇 채 없고 허름하지만 많은 고려인들이 이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면서도 씁쓸했다


고려인 우정마을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이후 소련이 붕괴되고 독립국가가 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 남아있는 고려인들은 졸지에 외국인의 신분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 나라들에서 공식원어를 우즈벡어와 카작어로 채택함에 따라 말도 통하지 않아 직장을 얻을 수도 없는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고려인들은 그 전까지 교사, 간부와 같은 요직을 차지했었지만 자국중심주의 정책으로 인해 배척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많은 고려인들이 다시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이주해옴에 따라 고려인의 새로운 삶의 터전인 우정마을, 고향마을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고려인 분들이 많이 빠져나가 이제는 러시아 사람들과 공존하며 지내는 곳이다




한국 정부가 러시아 땅을 구입하고 한국주택공사가 건축을 시도하다 완공하지 못하고 철수한 아쉬운 기억을 품고있다
이 곳에서 고려인들은 직접 유기농 콩 농사를 지어 메주를 쓰고 된장, 청국장 등을 만들어 한국에 판매한다고 한다





고향 마을에서 본 거위 가족 🐤





다음으로 우리는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찾았다

이상설 선생은 제 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었으나 외교권이 없는 나라의 대표라는 제국주의 열강의 반대로 실패하고, 이후 각국에서 외교활동을 벌였던 독립운동가이다
1914년에 이동휘, 이동녕 등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동지를 모아 대한 광복군 정부를 세우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1916년 하바롭스크에서 병석에 눕게 되어 결국 1917년 48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시고 말았다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 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실 정도로 독립에 앞장서신 분이다
유언대로 시신은 화장되어 수이푼 강물에 ㄷ뿌려졌고 그 후 수이푼 강변에 이 유허비가 세워졌다




이상설 선생 유허비




수이푼 강변


그 다음으로 간 곳은 고려인 문화 센터이다




고려인 문화센터는 2009년 10월 31일 러시아 한인이주 14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고려인 문화센터는 작게는 우수리스크, 넓게는 연해주 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각종 행사를 하는 문화센터 회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1층에는 고려인 역사관이 있는데 주로 고려인의 이주역사, 항일독립투쟁사, 강제이주역사, 현재의 고려인에 대한 이야기를 씨앗, 불꽃, 들꽃, 평화의 네 가지 주제관으로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려인 문화센터 내부



문화센터 외부에는 홍범도 장군비, 안중근 의사비, 의암 류인석 선생 비가 세워져있다




홍범도 장군 탄생 150년을 기념하는 비이다


독립전쟁의 전설적인 영웅 홍범도 장군
일본 침략자들에 맞서 조국의 독리봐 소비에트 연해주의 해방을 위해 싸운 전설적인 영운인 홍범도 장군은 '대한독립군' 사령관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소비에트 원동의 내전에 참가했으며 레닌의 주도로 소집된 원동민족대회에 대표자로 선출되어 참가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비이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07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항일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중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자의 자격으로 한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대한 침략의 원흉인 일본 추밀원의장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였다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셨다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의암 류인석 선생의 비이다


의암 류인석 선생은 한국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대유학자이며 항일 의병전쟁을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908년부터 1914년까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13도의군 도총재, 성명회 회장, 권업회 도총재로서 전체 독립운동을 헌신적으로 지도하신 분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곳인 최재형 선생 박물관이자 고택이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의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가이며 전노한족중앙총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사업을 하셔 많은 돈을 벌어 그 돈을 독립 운동하는데 전액을 사용하실 정도로 독립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신 분이셨다
지역 사람들이 집에 최재형 선생의 초상화를 걸어놓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표본이 되신 분이다

이 집은 1919년부터 1920년 일본헌병대에 의해 총살되기 이전까지 거주하셨던 곳이다
최재형 선생은 체포된지 며칠 만에 일제에 의해 총살되었지만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어디에서 처형됐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집은 얼마 전까지 실제 러시아인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고려인 문화센터에서 이 건물을 사들였다고 한다





이렇게 둘째날의 일정이 마무리가 되었다


답사를 마무리하고 숙소에 들어가 숙소 주변을 돌아다녀보았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러시아 세관 앞에 있는 동상





체육 문화센터와 비슷한 건물이라고 한다




둘째날을 마치며

우수리스크에서 이상설 선생과 최재형 선생에 대한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셔서 대한 독립을 위해 투쟁하셨던 이상설 선생님과 천민의 신분으로 태어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재력과 목숨까지 바치신 최재형 선생님의 일대기를 보면서 우리 민족이 얼마나 독립운동에 간절하게 임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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